인피니트(2021):기억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야. 기억은 계속돼.
1. 출연진 및 등장인물
- 마크 월버그 (에반 맥컬리):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남자. 극심한 기억 혼란과 정신질환에 시달리지만, 실은 수백 번 전생을 반복한 ‘인피니트’.
- 치웨텔 에지오포 (배서스트): 무수한 전생의 기억에 짓눌려 인류의 멸망을 꿈꾸는 또 다른 인피니트. 에반의 숙적이자 과거의 동료.
- 소피 쿡슨 (노라 브라이트맨): 인피니트 조직의 핵심 인물. 에반을 각성시키고, 기억을 되찾게 만드는 인도자.
- 제이슨 맨츠쿠스 (아티산): 괴짜 과학자. 에반의 기억 복원을 도우며 유머와 광기를 넘나드는 존재감으로 활력을 더한다.
2. 줄거리
에반 맥컬리는 자신이 배운 적 없는 언어, 격투술, 역사 지식 등을 갑자기 떠올릴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오히려 조현병 진단과 약물 중독의 낙인이 되어, 그는 현실에서 점점 무너져간다.
어느 날, ‘노라’라는 여성이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넌 인피니트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지.”
그를 데려간 곳은 죽음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모인 비밀스러운 조직. 과거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기억을 이어가는 이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전투를 벌인다.
에반의 과거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이전 생에서 치명적인 ‘에그’라는 무기를 만든 이자, 그것을 숨긴 인물이었다. 그 무기를 노리는 이는 바로 ‘배서스트’.
“기억은 축복이 아니다. 난 그 반복에 지쳤다.”
인류 자체를 없애려는 배서스트는 에그를 찾기 위해 에반을 추적한다.
에반은 아티산의 기계로 전생의 기억을 복원하고, 이전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실패와 죽음을 떠올린다.
과거의 전투, 동료의 죽음, 자신이 만든 파괴의 씨앗.
“이번엔, 다르게 끝내야 해.”
기억은 에반의 무기이자 짐이다.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류를 구할 열쇠를 손에 쥔다.
“기억이 널 지배하지 않게 해. 네가 기억을 선택해.”
3. 감독의 메시지
안톤 후쿠아 감독은 『인피니트』를 통해 단순한 전생 SF 액션의 틀을 넘어, **"기억과 정체성, 반복과 선택의 문제"**에 천착한다. 이 영화는 ‘환생’이라는 설정을 이용하지만, 단지 판타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실수 위에 서 있다. 그 기억을 끌어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게 이 영화의 본질이다.”
후쿠아는 기억을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체성과 행동의 기반으로 본다.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인피니트’들은 인간이 되풀이하는 실수, 고통, 회한의 총합이자 은유이다. 감독은 그 기억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성장하게 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 에반은 처음에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혼란 속을 헤맨다. 기억은 없고, 자아는 흔들리며, 주변 세계는 그를 '환자'로 본다. 그러나 그는 전생의 기억을 복원하면서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배서스트 역시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자다. 그는 기억에 짓눌려 인류를 소멸시키려 한다. “기억은 고문”이라는 그의 말은, 과거의 무게에 압도된 이들의 절망을 보여준다.
후쿠아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둘은 모두 ‘기억’이라는 무기를 들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이다.
또한 감독은 현재 사회에 만연한 정체성 혼란, 세대 간 반복되는 갈등, 자아 분열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전생이라는 메타포로 은유한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내가 이 기억을 지니고 살아야 할 이유는?"이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인피니트』는 이 질문들에 대해 SF적 상상력을 빌려 답하고자 한다.
결국 감독은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건넨다:
“기억이 당신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당신을 정의한다.”
4. 감상평
『인피니트』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액션과 더불어, 정체성과 기억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룬다. 마크 월버그는 혼란에 빠진 주인공의 내면을 안정감 있게 연기했고, 치웨텔 에지오포는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악역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특히 문신처럼 남은 전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싸우는 에반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후회’나 ‘반복된 실수’와 닮아 있다.
감정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인상 깊은 장면은 수술처럼 기억을 복원하는 시퀀스다. 그 고통은 단순한 정보의 회복이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를 상징한다.
『인피니트』는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기억을 잃는가?”, “반복된 삶 속에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액션과 함께 던지는, 철학적이면서도 오락적인 영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반은 눈을 감고 말한다.
“난 다시 돌아올 거야. 하지만, 다음엔 내가 먼저 선택할 거야.”
그 메시지는 단지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반복해온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번의 의식적인 선택’이 가능하다는 희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