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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2008) :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그 속을 조용히 걸어간다.

by 연이아빠의 LAB 2025. 5. 21.

걸어도 걸어도(2008) :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그 속을 조용히 걸어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지나고 보니 가장 그리운 날이었다.

1.  출연진 및 등장인물

 

  • 아베 히로시 (요코야마 료타): 죽은 형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소외감을 느끼는 둘째 아들.
  • 키키 키린 (요코야마 도시코): 말은 많지만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는 어머니.
  • 하라다 요시오 (요코야마 코이치): 감정 표현이 서툰 은퇴한 아버지.
  • 유 (료타의 아내): 사별 후 재혼한 여성으로, 새로운 가족 속에서 자리 잡고자 노력한다.
  • 아츠시 (유의 아들): 낯선 집에서 조심스럽게 가족을 바라보는 아이.

 

2. 줄거리

한여름, 바람조차 뜨거운 어느 날. 요코야마 가족이 오랜만에 모인다. 15년 전 바다에서 익사한 장남 쥰페이를 기리는 기일. 마치 평범한 가족 모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감정의 생채기가 숨어 있다.

둘째 아들 료타는 재혼한 아내 유와 그녀의 아들 아츠시를 데리고 어머니 도시코와 은퇴한 아버지 코이치의 집을 방문한다. 부모는 겉으론 반가움을 표현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사소한 잔소리를 퍼붓고, 아버지는 냉담한 시선으로 료타를 관찰한다.

“형 같지 않다.” 료타는 과거 부모가 했던 이 말이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가족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무덤에 다녀오고, 밤에는 마당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큰 갈등은 없지만, 대화 속엔 여전히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특히 어머니는 자신들이 매년 초대하는 익사 사고의 생존자를 향해 냉정한 말을 서슴지 않고, 죽은 아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주변 사람들에게 씁쓸함을 남긴다.

료타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을 떠올리며, 여전히 자신이 “대체자”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유와 아츠시를 통해 그는 조금씩 새로운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고, 상실과 비교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하루는 그렇게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인물들의 표정, 말의 단절, 짧은 눈맞춤 속엔 세월이 남긴 마음의 무늬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하루는,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3. 감독의 메시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하고 집요하게 던진다. 그는 영화에서 단 한 번도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일상의 틈, 그리고 쌓이고 묻힌 말들 속에서 가족의 진실을 그린다.

1) “가족은 반드시 사랑으로 묶여 있지 않는다.”

고레에다는 이상화된 가족상을 부수고,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관계로 가족을 그려낸다.
『걸어도 걸어도』의 인물들은 서로를 향해 기대하지만,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작은 실망이 쌓이고, 그 실망은 결국 말하지 못한 감정으로 남는다.
감독은 말한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관계를 이어가는 힘이다.”

2)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말하지 못한 감정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말보다 침묵이 많다. 이 침묵은 공허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감추는 방식이다. 부모는 죽은 장남을 향한 슬픔을 ‘기일’이라는 형식으로 억누르고, 료타는 비교당했던 기억을 유머로 비튼다. 이처럼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부엌과 거실, 산소와 식탁 사이를 흐르며, 감독은 그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3)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걷게 할 뿐이다.”

영화 속에서 하루는 특별한 사건 없이 흐른다. 그러나 그 하루 속엔 수십 년 간의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고레에다는 말한다.

“화해란, 용서하고 울고 껴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상태로 걸어가는 것이다.”

가족은 완전해질 수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관계의 의미라는 메시지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에 대한 다정한 고백이자, 시간이 남긴 감정의 무늬를 비추는 정적(靜的)한 거울이다.
감독은 큰 사건 없이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는 이 작은 하루를 통해 말한다:

“잊힌 날들이, 때로는 가장 깊은 사랑을 품고 있다.”

4. 감상평

이 영화는 잔잔함 속에 날카로운 감정을 품고 있다. 대사가 아니라 손짓, 눈빛, 식사 준비 같은 소소한 행위로 감정을 전한다.
키키 키린의 잔소리와 침묵, 아베 히로시의 말없는 슬픔은 극적인 장면 없이도 깊은 울림을 준다.

『걸어도 걸어도』는 죽은 이를 기리지만, 남은 이들의 삶을 응시하는 영화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함께 걷는다. 하루하루, 조용히, 끝까지.”